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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쌤글) 나의 소소한 은퇴이야기

범경아 범쌤교실 2025. 8. 20. 09:30

나는 은퇴를 자주 한다.

얼마 전 네잎클로버 뜨개질에서 은퇴했다.
네잎클로버를 100개쯤 뜨고 나서 은퇴를 선언했다. 물론, 은퇴 후에도 네잎클로버는 하나씩 가끔 뜬다.
‘은퇴’를 선언하면 ‘또 은퇴해?’라며 아이들은 웃는다. 은퇴를 했어도 가끔 몇 개씩 만들기도 한다.


나의 은퇴는 완벽을 핑계도 시작도 못하는 나를 독려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소중한 도전과 사소한 결과에 만족하려는 작전이다.

다음은 은퇴했던 일 중 몇 가지이다.

미꾸라지 6개월 –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미꾸라지도 육개월 넘게 키웠다. 나중에는 뱀장어만큼 컸는 데 만지기가 무서웠다. 청소하려고 열어놓은 하수구로 퐁당 빠졌다. 안녕~ 추어탕으로만 만나자~

금붕어 키우기 3년 – 대형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준 금붕어를 3년 넘게 키웠다. 뽀글이도 없는 장독 뚜껑에서 토실토실 살이 오르던 금붕어는 천수를 다했다.

고슴도치 5년 –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얻어온 고슴도치 두 마리를 키웠다. 성체 때 만났더니 목욕시킬 때마다 가시로 찔렀다. 추운 날 자꾸 구석으로 도망가는 고슴도치를 드라이기로 살려내기를 수차례. 자궁 수술에, 전신 마취에, 동물병원을 많이도 다녔다. 5년이 넘은 어느 날 한 마리씩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잘 묻어 주며 더 이상의 고슴도치는 안 키우기로 했다. 고슴도치 카페에는 랜선 집사로 남아있다.

아크릴화 그리기 60 작품 – 유화를 그리고 싶었던 마음으로 아크릴화에 도전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번호마다 색을 칠해서 완성하는 제품을 구입해서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가족들 식사와 대화를 나눈 후 매일 시간을 쪼개서 색을 칠했다. 휴일에는 8시간도 넘게 색칠하기를 했고 30개가 넘어가니 제법 그럴듯해져서 주변에 선물하기 시작했다.
여행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남기기도 한다. 누가 살 것도 아니고, 나만 좋으면 된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집에는 그림이 많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복했다.


구피 2년 반 – 센터를 떠나면서 센터에서 키우던 구피를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열 마리를 데려왔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마음이 힘들었을 때 살아 움직이는 구피들을 멍하니 보았다. 밥만 줘도 너무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어느새 대가족을 이루었다. 깨끗한 물에서 살라고 바닥청소 물고기를 사서 넣어주었는 데, 다음날 구피가 다 죽어서 물에 둥둥 떠 있었다. 울면서 모두 떠내려보냈다. 물고기 키우기 은퇴.

슈링클스로 장식 만들기 – 좋아하는 캐릭터를 모두 그렸다. 흰둥이와 토토로, 빨간머리앤을 엄청나게 만들었다. 장사를 해도 될만큼 만들고 나니, 익숙해졌다. 나누고 남은 열쇠고리가 아직도 좀 남았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사진을 그려서 구워서 선물해드리니 참 좋아하셨다.


아직 은퇴하지 않고 계속하는 일도 있다.
노후를 위해 하는 일이다.

재활 필라테스를 3년 1개월째 꾸준히 다니고 있다. 다쳤던 무릎과 발목을 회복해서 조만간 다시 중장거리를 뛸 것을 목표로 한다.

공부는 평생 은퇴를 못할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뜨개질이나 슈링클스, 아크릴화, 수채화 등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일은 잡생각을 없애고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깨와 목에 통증을 온다. 다시 운동을 하고 건강을 관리한다.

올해로 3년을 참석했던, 청글넷의 새벽글쓰기모임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할 것 같다. 함께 새벽을 여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좋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다시 시작하려는 일도 있다.

사느라 바빠 10년 넘게 다루지 않았던 악기를 다시 하려고 한다.
통기타로 김광석과 이문세의 노래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건반을 누르기가 두렵지만, 지금부터 다시 하면 환갑 때에는 예전처럼 피아노도 칠 수 있을 것 같다.
드럼은 제대로 배울 예정이다. 눈, 손, 머리, 다리가 모두 따로 움직이는 악기라 치매 예방을 위해 딱 몇 곡만 연습할 예정이다. 은퇴공연도 계획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다시 누워서 시원한 매미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다.
베란다에는 먹고 남은 씨를 뿌려놓은 파프리카가 열리고, 뿌리를 내려놓은 미나리도 자란다.
남향이라 여름에는 해도 잘 안드는 데, 죽지 않고 잘 살아있는 화분을 보면 고맙다.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상의 익숙함도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애를 써야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에 대한 유튜브를 보았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 매일 운동하는 사람, 매일 정해진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분이 참 존경스럽다.

작심삼일도 120번 하면 일 년이 된다.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해보자고 말한다.
나는 작심삼일과 은퇴를 반복하며, 열심히 나만의 루틴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