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경아 범쌤교실
100세, 범경아 소장. 나의 행복. 예쁘다 본문
전문강사로 활동하던 2008년 즈음 청각장애인 대상 강의를 별 두려움없이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옆집에 살던 청각장애인 부부를 만나서였다.
나는 미취학, 초등 저학년인 두 딸을 키우는 두 분을 돕고 싶었고, 학교 다녀오면 간식을 챙겨 먹이고 숙제를 하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내 딸들과 함께 돌보았다. 언니네 부부가 호떡 장사를 하고 새벽에 들어오실 때까지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자거나 무서울 때는 언제든 문을 두드렸다. 새벽마다 장사를 마치고 들어온 언니의 공갈빵은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농인인 언니와도 두 세 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었고, 강의 분위기도 좋아서, 몸짓으로도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2023년부터 매주 1회씩 청각장애인 수업을 다시 시작했고, 나의 강의를 통역해주는 수어통역사의 몸짓에 감탄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모든 말은 수어통역사를 통해 다시 재창조된다. 강의 내용은 새로운 단어와 표현으로 정리되서 전달된다. 문장보다는 단어 위주의 전달이 많고, ‘인권 감수성’, ‘딥페이크’ 등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조차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사실상 내 강의라기보다는 그분의 강의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작년과 올해 청각장애인들에게 ‘시사 상식’을 전달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의 책임감은 더 커졌다. 그래서 번잡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외부활동을 추가했다.
명동 거리와 명동성당, 젊은이가 많은 홍대 팝업스토어를 다니면서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는 감격 어린 말씀이 단지 연세 때문인 줄 알았다.
청각장애인들은 인지가 좋은 편이고 신체적인 어려움이 덜해서 이동에 큰 어려움이 없을줄 알았는 데, 아니었다. 모든 이동동선을 시간대별로 짜야하고, 이동하는 모든 곳에서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듣지 못해 교통사고를 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최근 청각장애인을 위한 돌보미견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내가 만난 수어통역사들은 TV에서 본 것처럼 우아하게 통역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손을 잘 보이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다니고, 일상부터 법원, 병원까지 다 다녀야 하는 고된 전문가이자 예술가이자, 청각장애인의 대변자였다. 손과 몸으로 하는 수어 노래가 우아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다시 깨닫는다.
매주 왕복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 청각장애인 대상 수업은 누가 보기에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들을 수 있는 청인 앞에서는 낯을 가리고 어색해서 조용히 손짓으로만 소통하던 하던 분들이, 내 앞에서는 소리를 내고, 깔깔 웃는다.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이 수업이 얼마나 소중한 수업인지 다시 깨닫고 진지해진다. 우리 둘째는 청각장애인 수업에 함께 다녀온 후 ‘청각장애인들이 이렇게 수다스럽고 활발한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마음이 편할 때 그들은 활발하고 시끌시끌해진다. 덕분에 나의 얼굴이나 몸짓은 더욱 다양해지고, 표현도 풍부해졌다.
간단한 단어는 조금씩 눈치로 알지만 수어는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 내가 ‘수어를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자,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우리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집중해준다.’고 하셨던 말씀으로 힘을 얻는다. 청각장애인들이나 수어통역사들이 수어로만 소통할 때, 통역을 해주시는 배려를 받음에도 나는 외국에 홀로 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청각장애인들은 늘 이런 기분으로 살아왔으리라 생각하니,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여 온 그분들의 세월이 아쉽고 야속하다.

수업이 끝날 무렵 청각장애인 한 분이 수줍게 종이를 내밀고 가셨다.
“100세, 범경아 소장. 나의 행복. 예쁘다”
아마도 통역을 하면, ‘범경아 소장님 100세까지 사세요. 요즘 이 수업에 오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우리와 함께 수업을 하시는 모습이 예쁘십니다.’ 일 것이다. 수어를 모르는 나를 위한 선물이다.
올 4월부터 청각장애당사자, 수어통역사 스터디 모임에서 사회복지용어를 나누고 있다. 나의 지식은 얼마나 얕은가. 나누려고 시작했지만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단어에 의미에 맞는 수어가 없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것을 찾아내는 수어통역사들은 마법사처럼 더 놀라웠다.
수어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정확한 의미를 전하는 소통창구이자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모든 사람의 능력이 다 다르기에, 장애 여부를 떠나 차별없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농인이든, 청인이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누구든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되길, 만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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